22기 이상대 동지의 글입니다.

 

“이 중위... 예비 낙하산을 펴란 말이다!”
[이상대의 공수여담] 마지막 공수 훈련, 그 아찔한 기억
 
newsdaybox_top.gif2010년 06월 23일 (수) 16:50:01이상대 기자 btn_sendmail.gif Editor@AcropolisTimes.comnewsdaybox_dn.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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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가 이제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나에게는 마지막 강하가 될 집단 강하 훈련이다. 그래 드디어 이번 한번만 더. 언제나 그랬지만 강하를 기다리는 며칠간은 항상 긴장된다. 내가 부팀장의 역할이라면 제대 말년 핑계대고 한번 슬쩍 강하 명단에서 빼달라는 명분이라도 있는데. 이건 홀로 팀장이니 약한 모습 보일 수가 없다.

우리 4중대는 그래도 팀웍만큼은 알아 줬는데. 같이 강하할 중대는 1, 2, 3중대다. 특히 같은 2조로 편성된 3중대 팀장은 ROTC 한해 선배인 방성호 중위님이 맡고 있다. 장기 복무를 지원한 방 중위님은 복무중 UDT 훈련까지 수료한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진정한 공수맨이다.

강하하기 전날 밤은 누구나 수많은 생각들로 잠을 설친다. 내일 혹시 내가 죽는 날이 아닐까? 혹시 내 낙하산이 불량품이면? 접지할 때 다리라도 부러지면? 그래도 그날은 영락없이 밝아 온다. 강하지에 도착하면 군종장교님의 안전 강하를 위한 기도를 받는다. 신자든 아니든 이때만은 진지하다.

  
수송기 앞 강하 직전 사진

"장비 착용"

2인1조로 상대방의 착용을 도와주고 확인한다. 첫 강하시 그렇게 떨리던 손은 이제는 그래도 많이 진정되었다. 초여름이지만 등에 지는 주 낙하산과 가슴에 단 예비낙하산, 헬멧, 그리고 산악 강하의 안전을 위해 입는 산악복을 착용하면 말 그대로 대낮에 사우나하는 느낌이다.

갑자기 굉음을 몰고 접근하는 비행기는 보기도 둔해 보이는 2차대전시 활약했던 40여년이나 노후한 수송기 C-123. 벌써 두 번의 대형 사고를 낸 놈이다. 뜨거운 엔진에서 나오는 열기를 받으며 후문으로 들어간 비행기 속은 비좁아 서로서로 밀착하면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방음 장치가 없는 비행기 내부에는 고막을 찢는 엔진소리 그 자체부터가 공포다.

문이 닫히고 DZ(DROP ZONE)을 향한 비행이 시작된다. 아무도 말이 없다.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려면 떨릴 목소리, 공포의 표현보다 차라리 말을 않는 게 현명하다는 사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들 있다. 또한 긴장된 가운데 오래있다 보면 소변이 마려운 경우가 있는데 수송기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허벅지를 감싸 도는 결박끈이 그 주위를 압박하여 더욱 더 괴로움을 가중시킬 때가 있다. 힘든 싸움에서 패하는 대원들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크 강하지역 4분전.

“전체 일어섯”

강하 조장이 외치는 소리에 강하 1조인 1중대와 2중대원들이 일어선다. 고리를 걸고 장비검사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빨간 표시등이 녹색으로 변함과 동시에 줄을 지어 밀려가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창공을 박차고 사라진 그들 모두의 낙하산이 안전하게 펴졌을까?

  
집단 강하 사진

3중대와 내가 속한 4중대는 강하 2조다. 수송기가 또 한 번의 우회비행 후 DZ로 회귀한다. 바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짐작만할 뿐이다.

강하지역 4분전,

“전체 일어섯”

“고리 걸엇, 고리줄 검사”

“장비 검사”

긴장된 순간이다.

강하 지역 1분전.

붉은 등이 들어온다. 이제 붉은 등이 녹색으로 바뀌면 마지막 강하가 시작된다. 이제 한번만 더. 이제 그렇게 잠재의식 속에 새겨졌던 죽음과 사고의 공포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이제는 뒤돌아 갈수도 없다. 팀장으로서 12명의 중대원을 뒤로 한 채 대열의 맨 앞에 선다. 중간에 있으면 앞대원의 뒤통수만 보여 공포가 덜하겠지만 비행기 문이 열리고 맨 앞에 선 자로서 강하할 지역을 내려 본다는 것은 다리까지 떨리는 이중 공포다.

"장비 검사 이상무"

이제는 창공으로 몸을 던진다. 뒷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죽으면 죽는거지 뭐. 파란불이 왔다. 얼마나 긴 1분이었던가. 3중대장 방 중위님은 좌측 문으로, 나는 우측 문으로 동시에 몸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기억이 없다. 본능적으로 외친 "일만 이만 삼만 사만" 곧이어 뒤에서 심하게 낚아채는 느낌이 온다. '덜커덩' 정신이 들고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끝없이 축적되었던 긴장이 순간적으로 해소되는 느낌/쾌감.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졸여왔던가. 행복한 순간이다. 머리위로 산개한 낙하산을 보면 눈물이 난다. 아래를 보니 정확히 DZ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반대쪽으로 떨어진 방 중위님의 낙하산이 쏜살같이 날아온다. 피하기 위해 배운대로 오른쪽 조정줄을 세게 당겨 방향을 틀었으나 이미 늦었다. 방 중위님의 몸이 이미 내 주낙하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갑자기 낙하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들었던 낙하사고의 주원인인 일명 담배말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경우 두 낙하산이 모두 공기를 못 받게 되기 때문에 그대로 내려오면 사망이요 예비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해도 기본으로 허리 정도는 나간다. 그해 3월 타 부대 대원들에게 동일 상황에 발생 두 명의 대원이 엉켜 모두 사망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심장에 칼을 그은 듯 쭉 떨어지는 느낌, 정신을 놓치기 쉬운 순간이었다.

위를 보니 방 중위님이 소리치며 정신이 없었다. 아마 예비 낙하산을 펴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방 중위님의 두 낙하산과 나의 주낙하산은 이미 바람을 받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한 상태. 두 사람의 목숨은 내게 남은 가슴에 단 예비 낙하산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개방하면 완전히 일자로 꼬이지 않은 윗 낙하산들과 다시 꼬여 문제가 계속 꼬이게 된다.

'좀더 기다려야 해.'

지금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판단이 섰는지 Gracias a Dios!

땅에 가까워오자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오른손으로 예비 낙하산의 안전핀을 힘차게 뽑아 던졌다.

'푸드득'

가슴에서 날개가 튀어나왔다.

'덜커덩'

몸이 잠시 다시 위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예비 낙하산이 활짝 개방되었다. 다행이도 둘둘 말린 문제의 낙하산들과의 꼬임이 생기지 않았다. 예비 낙하산이 펴진지 정말 5초나 됐을까, 우리 둘은 같이 붙은 채로 산등성이로 접지하며 미끄러졌다. 접지 지역이 경사져 있어서 충격을 많이 흡수한 것이다. 이런 경우 접지할 때 튕겨 오르는 경우도 많다. 아래에서 강하를 보조하던 안전 요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아마 사망 혹은 중상을 예상하고 낙하지점을 보고 도우러 온 것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방 중위님과 내가 온전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거린다.

이날이 제대를 한 달여 앞둔 1986년 5월23일이었다. 요즘도 간혹 그때의 순간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인 것을. 이렇게 덤으로 주어진 삶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며 지낼 이유밖에 없다.

이 에피소드로 저의 공수 부대 체험기를 접는다. 자랑 아닌 자랑이 많이 되어 버렸다. 제가 강인한 체격의 무술로 단련된 진정한 공수맨이었으면 이렇게 체험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연약한 인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 동안의 이색 체험기로 읽어 주셨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천안함 희생 장병의 명복을 빌며 그 가족들에게 다시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

추가로 몇 장의 추억 속 사진을 올린다.

  
84년 8월 27일로 찍혀있다. 전입 후 바로 투입된 전술 훈련 중 동료 장교들과 함께한 사진이다. 김 중사와의 갈등, 앞으로 펼쳐질 2년의 군대 생활에 대한 걱정 등등으로 생각이 좀 복잡했다. 홀로 안경을 끼고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애처럽게 보인다. 내 오른쪽에 바로 앉은 이가 같이 저승의 입구까지 같이 같던 방성호 중위님이다. 방 중위님은 2년전에 특전사령부에서 대령으로 근무하면서 육군본부 발령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결이 끊어졌다. 혹시 장성 진급은 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천리 행군 도중 경남 거창 공설 운동장 옆 들판에서 헬기 강하 시범을 앞둔 모습이다. 군민의 날 축하 행사로 공수 낙하 시범과 함께 특공 무술 시범이 있었다. 특공 무술 시범에 투입된 다른 대원들은 시범 마지막 단계에서 박치기로 항아리를 격파하는 시범을 보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저는 강하도중 떨어지는 헬멧을 한 손으로 잡다가 방향을 놓쳐 댐 쪽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자칫 위험한 순간을 맞은 기억이 있다.

 

  
이사진은 올릴까 많은 고민을 했다. 대천 앞바다에서 있었던 2주간의 해양 침투 훈련중의 우리 중대원들의 모습이다. 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맥주병인 본인은 훈련을 위해 대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공수훈련의 몇 배나 되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상상해 보시길. 첫날 오전 훈련 후 짠물을 몇 번 마셔 거의 졸도 직전 그때 저를 살려준 천사가 나타났다. 서울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공수부대 체험/극기 훈련을 위해 내려온 것이다. 잽싸게 인솔 교관을 자청해 훈련에 빠졌다. 특히 한 인솔 여교사님과 눈이 맞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맥주병이란 사실을 모르고 떠났다. ㅋㅋ 저를 이해하고 기회를 주신 대대장님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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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22기
현재 21기 방성호 준장은 육군 특전사 1공수 여단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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