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침표 / 7기 최문항마침표.(Punto final)
7기 최 문 항
노갈리스 스왓밑에는 L.A에서 내려온 칠팔 명의 한국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장사하러 다녔다. 나이가 제일 어린 영수는 깡통 밴 하나 가득 각종 운동화를 싣고 다니면서 더 팔 물건이 없을 정도로 거의 다 팔아 치웠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더 장사하고 낮 시간에 L.A로 떠날 예정이었다.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영수는 다른 사람들이 내일 낮에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고집을 부리고 혼자 L.A를 향해 밤길을 나섰다. 영수의 하얀 밴이 광장을 한 바퀴 돌고 투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때 검은색 포드 픽업트럭이 그 뒤를 쫒고 있었다.
인수가 마리노 식당 앞을 지날 때 멕시칸 건달들이 서로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로패스 삼 형제가 꼬래아노를 쫓아갔다”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인수 가게에서 잠시 일 한 적이 있는 호세 녀석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들었었는데 왜 그놈들이 꼬래아노를 쫓아갔을까? 그게 혹시 영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인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 조금 전에 건달 녀석들을 찾아보았다. 마침 길 건너에 호세가 담배를 피워 물고 서 있었다. 인수가 휘파람을 휙 불며 손을 흔들자 호세가 천천히 건너왔다.
“하이 호세 잘 지내냐?”
“늘 그렇지 뭐! 요즘은 일 안 주냐?”
“너 일하고 싶으면 다음 주에 우리가게로 오라고, 내가 일거리를 만들어 줄게.”
“정말? 꼭 부탁한다.”
“그런데 말이야 로패즈는 요즘 어디 갔냐? 통 안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걔는 일 필요 없을거야! 오늘 한탕 한다고 했으니까.”
“한탕? 그게 뭔데?”
“그런 것이 있어”
호세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인수가 호세 허리띠를 바짝 움켜쥐고 가게 안으로 끌어 드렸다. 의자에 내동댕이쳐진 호세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인수를 올려다봤다.
“너 아는 대로 말해, 조금 전에 너희들 하는 소리 다 들었어! 로패즈 놈들 지금 어디로 갔냐?”
“그 덩치 큰 꼬래아노 쫓아갔다고, 벌써 한참 됐는데...”
인수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걷어서 차에 쑤셔 넣고 빈 텐트는 옆 가게 오 씨에게 부탁했다. 인수는 19번 프리웨이를 타고 전속력으로 투산 쪽을 향해 달렸다. 투산에서 10번 서쪽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가 피카초에서 내렸다.
노가리스를 오가며 우리 패거리들이 늘 들리는 세브론 주유소로 급히 들어섰다.
“아저씨 오늘 영수 보셨어요? 그 덩치 큰놈이요.”
“왔었지, 오늘은 왜 한 사람씩 들리지? 그 녀석 10번 안타고 이 늦은 시간에 사막 쪽으로 들어가더라고 금방 어두워질 텐데 말이야.”
“누구 쫓아가는 차 없었어요?”
“검은색 픽업한대 달고 급히 가던데 왜 무슨 일 있었나?”
“아저씨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우선 경찰에 연락 좀 해 주세요, 납치 사건이라고요.”
주유소를 빠져나온 인수는 프리웨이 다리 밑을 지나 오른쪽으로 차를 돌렸다. 어둠이 내리 깔린 벌판을 질주하면서 영수의 흰색 밴을 찾았다. 길은 곧게 뻗어 있었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모래언덕은 맘먹은 대로 속력을 낼 수 없었다. 사막 끝에 내려앉은 까만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영롱했다. 그놈들이 영수를 털었다면 이렇게 사막 가운데까지 끌고 들어오지 않았을 것 같았다. 만약에 영수를 사막 한가운데 버리고 밴까지 몰고 달아났다면 이 벌판에서 어떻게 영수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
인수는 차를 돌렸다. 느린 속도로 운전하면서 길가에 바퀴 자국을 살폈다. 움푹 꺼져 들어간 곳에 바퀴 자국이 어지럽고 여러 사람 발자국이 보였다. 인수는 차를 세우고 급히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막의 밤공기가 싸늘했다. 차에서 권총과 후레쉬를 꺼내 들고 원을 그려가며 찾기 시작했다.
모래언덕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달려갔다. 머리를 검은 헝겊으로 온통 뒤집어씌워 놨지만 한눈에 영수인 것을 알아차렸다. 인수가 달려들어 얼굴의 헝겊을 벗기고 팔과 다리에 겹겹으로 둘려 붙여놓은 회색 테이프를 풀어 주었다.
“인수 형! 으흐흐...”
“영수야...”
“그놈들이 내 돈, 내차 다아... 혀-엉 흐흐흐...”
“괜찮아! 몸만 안 다쳤으면 ...”
둘은 쌀쌀한 사막 한구석에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영수야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살아 있으면 언제건 어디서건 만날 수 있잖아.”
영수는 대답이 없었다.
“돈은 또 벌면 되고 차도 얼마든지 더 좋은 것으로 다시 사면되는 거야.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해! 왜 내가 여기까지 널 찾아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들은 차를 천천히 몰아 김 선생이 운영하는 세브론 주유소까지 나왔다. 언제부터 우리를 기다렸는지 경찰 두 명이 인수에게 다가왔다. 영수에 대한 신분을 확인하고 빼앗긴 돈의 액수 그리고 범인들에 대해 자세히 물어왔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범인들은 세 명이었고 수염을 기른 라울이라는 놈이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영수를 테이프로 팔다리를 묶어놓고 머리에 검은색 티셔즈를 뒤집어씌워서 모래 웅덩이에 밀어 넣고는 영수의 흰색 밴과 그들이 타고 온 검은색 픽업트럭을 몰고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갔다고 영수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찰이 범인들에 대해 다시 자세하게 물어왔다.
“로페즈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고 했지? 그들 이름이나 얼굴의 특징 혹은 문신 같은 것은 없었나?”
“그들은 삼 형제인데 노갈리스 시장 근처를 배회하면서 잡일을 거들며 용돈이나 챙기던 순진해 보이는 멕시칸 정도밖에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경찰들은 사람이 안 다쳤다니까 그저 늘 벌어지는 사건 정도로 취급하고 보고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영수와 인수는 L.A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놈들이 노갈리스부터 네 뒤를 쫓아온 거 알고 있었냐?”
“아니, 주유소에서 기름 다 넣고 차에 올라타니까 라울이 권총을 빼 들고 옆자리에 올라앉더라고, 그리고 사막 쪽으로 들어가자는데 꼼짝 못 하고 당했지 뭐.”
“그래도 그놈들 의리는 있네, 몸은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
“형, 지금 노갈리스로 가면 그놈들 잡을 수 있을까?”
“잊어버려! 그놈들 벌써 멕시코로 튀었을 거야.”
“형 그 밴하고 요번에 물건 판돈이 내 재산 전부라고! 이제 어떻게 하지?”
그 일을 당한 후 영수는 인수 하숙방으로 짐을 옮겼다. 어디를 가나 둘은 붙어 다녔다. 노갈리스 수왓밑 주변에서 로페즈놈들의 소식을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그들은 벌써 멕시코 깊숙이 숨어버렸고 건달들은 공공연하게 그 사건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다녔다. 전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구걸하던 놈들이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왔다.
영수는 인수가게에서 일하면서도 한인 수왓밑 일행들을 슬슬 피하고 거북스러워했다. 특히 월남전에 갔다 온 오 선생은 영수만 보면 ‘군대를 못 갔다 와서 멕짝같은 별별일 없는 놈들한테 당한 거야.’라고 단정해서 말하곤 했다.
“우리 옛날에 월남에서 싸울 때 딱 대검 하나 차구 한동네 싹 쓸어 버렸지, 청룡 빠찌 달구 싸이공 거리 나가면 아 쌔 끼들이 발발 떨었다구...”
어쩌다가 술판이라도 벌어지면 오 선생은 늘 월남전은 혼자 갔다 온 것처럼 떠들었다.
“형, 우리 옆방 박 선생은 엘파소 국경까지 내려간 데, 시장도 크고 장사 잘된다고 운동화 가지고 자기 한번 따라와 보라던데.”
“너 솔찍히 말해봐, 오 선생 싫어서 그러는 거지, 그러게 남들 다 가는 군대는 왜 안 가고 그런 소릴 듣냐? 아예 미군 가라 더 늦기 전에.”
“그럼 식구 다 이민 가는데 안 가도 된다는 군대 갈 골빈 놈이 세상에 어디있쑤, 언제 기회 봐서 오 영감 한번 받아 버릴 거야 씨X.”
인수와 영수는 노갈리스에서 한참 동쪽에 있는 엘파소에 자리를 잡았다. 밴에서 먹고 자면서 L.A와 엘파소를 오고 갔다. 어둠이 내린 사막 한가운데서 밤을 지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인수형 왜 미국 왔어? 애인도 없이.”
우리는 물 탄 보드카를 소주 마시듯 병째로 마셨다. 모닥불에 얼굴이 벌겋게 물든 인수는 대답 없이 보드카를 들이켜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난 어느 여자도 사랑할 수 없어!”
“왜요 고자라도 됐수?”
“내겐 정순이라는 여인이 있었지... 다시는 만나 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너는 모를 거다.”
“그래서 지금 우는 거유 형?”
“차라리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정순인 정말 예뻤어... 그리고 순박하고 다정했어, 그런데 날 여기 팽개쳐 버리고 먼저 가 버렸어, 하늘나라로...”
울먹이며 정순 이야기를 하던 인수가 보드카를 병째 마시면서 먼 하늘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 온종일 뙤약볕에 시달릴 텐데 잠 좀 자두자.”
흐트러진 감정을 추스르고 인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수가 발로 모닥불 위에 모래를 덮어놓고 차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엘파소의 아침이 밝아오면 멕시코사람들이 주차장에 버스로 몇 대씩 몰려와서는 우리가 갔고 내려간 물건을 아예 몽땅 훑어 가곤했다. 인수는 L.A에서 전자제품, 운동화, 옷 할 것 없이 준비해 내려 보내고 영수는 엘파소에 진을 치고 돈을 긁어모았다. 검은 쓰레기 자루에 받아 넣은 잔돈을 밤새도록 세면서‘이런 걸 돈벼락 맞았다고 한다.’면서 입이 귀에 걸리곤 했다. 인수는 그렇게 모인 돈을 바탕으로 L.A에 큼직한 리커스토아를 열었다. 영수를 엘파소에 자리 잡게 해준 박 선생은 옷 장사로 재미를 보았는데 엘파소에 큰 집을 마련해놓고 브라질에 있던 식구들을 다 불러올렸다. 평소에 영수를 사윗감으로 점찍어놓고 있던 박 선생은 딸이 브라질에서 올라오기가 무섭게 L.A까지 인수를 찾아왔다.
“인수씨 동생 나주시요!”
“네? 영수를 달라고요? 저도 L.A에 벌려 놓은 일 때문에 영수를 불러올리려던 참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영수를 내 사윗감으로... 물론 형님 먼저 결혼하고 동생이 해야 옳은 법이지만 우리 딸애도 영수를 좋아하는 눈치고 해서,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한테 뺏길까 봐 걱정돼서 그래.”
“아 ~ 예 제가 영수에게 넌지시 물어보겠습니다.”
“그럼 형님은 찬성하는 거로 알고 내려가겠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직 한국에 계신가요?”
“그게 저... 자세한 건 나중에...”
영수의 결혼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영수 부모는 뉴욕에 계셨는데 영수가 연락을 안 하는 바람에 결혼식에 못 오셨다. 영수는 복잡한 가족 관계를 인수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박 선생은 인수, 영수가 생긴 것은 전혀 다른데도 옛날 고생할 때 한 하숙방에 둘이 뒹굴 때부터 친형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시킨 후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의래 인수를 찾아와 의논했다. 인수도 영수네 집을 형님 자격으로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모두가 그렇게 인정했다.
영수는 결혼 후에도 엘파소를 떠날 수가 없었다. 민영이 포튜갈어를 잘해서 부모님 가게를 돌보며 멕시칸들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장사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서 날로 번창해 갔다. 어느덧 한해가 지나고 첫딸을 낳았다.
*****
영수가 L.A에서 물건을 잔뜩 싣고 엘파소 어귀에 들어서다가 로페즈 형제 중 막내 페드로를 발견하고 격투 끝에 붙잡았다. 소식을 들은 큰형 라울은 영수 앞에 나설 수 없으니까 늙수그레한 멕시칸 영감을 보내서 라울의 말을 전했다.
- 모든 돈은 다 탕진해버렸고 라울이 현재 가진 돈이 5백 달러밖에 없으니 우선 이 돈을 받고 합의해 주면 차후에 더 많은 돈을 돌려주겠다.- 고 했다.
영수는 그 영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합의를 원한다면 당장 5만 달러를 갖고 경찰서로 찾아오라고 했다. 라울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막냇동생 페드로는 교도소에 갇히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라울과 안토니오는 동네 꼬마들을 시켜서 공공연하게‘영수를 죽여 버리겠다.’는 쪽지를 여러 차례 보내면서 협박했다.
민영은 아버지와 의논해서 영수를 L.A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인수가 영수가족을 L.A로 불러올려 이스트 L.A 쪽에 있는 자그마한 마켙을 운영하게 맡겨놓았다. 그리고 다음해 봄쯤에 민영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켙을 구입해서 온전히 주인이 되었다.
민영과 영수는 비록 조그마한 마켙으로 시작했지만, 무엇이든 자리 잡힌 인수 형네 큰 마켙을 흉내 내면서 의욕이 넘쳐났다. 영수가 개업한 지 몇 달 안 되고 손님들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조금씩 해보던 체크캐싱이 점점 늘어 일주일에 3만 달러가 넘게 거래하게 되었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큰 금액을 다루게 되니 수입은 좋았으나 늘 불안했다. 인수가 지역이 험악하다면서 오피스 앞을 방탄유리로 막자고 했다.
비 오는 오후 마른 아스팔트에서 풍겨오는 눅눅한 냄새가 역겨웠다. 영수는 체크캐싱 해줄 현금 3만 달러를 찾아가지고 은행에서 곧바로 가게로 돌아왔다. 아내는 현금을 찾아올 때마다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사무실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는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는데 겨우 석 달을 넘긴 지금은 마치 영수 내외가 철창 안에 갇힌 것 같이 답답하고 드나들 때마다 고리를 네 개씩이나 풀었다 잠가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계산대 밑에다 미국식 요강을 드려 놓은 지도 오래됐다.
마틴이라는 학생이 방과 후 파트타임으로 마켙 안을 돌아다니면서 물건 정돈과 청소도 하고 잡일을 맡아 했다. 금요일 오후 멕시칸 두 놈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맥주병으로 마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피를 철철 흘리는 마틴을 구해주기 위해 영수가 방탄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문 뒤에 숨어있던 라울이 방탄유리문을 열어 잡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수가 몸을 돌리는 순간 라울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두 발은 가슴에 한 발은 오른쪽 다리를 관통했는데 마지막 한 발이 하복부에 깊이 들어 박혔다. 라울 로페즈는 옆에 서서 와들와들 떨고 서있는 민영을 옆으로 홱 밀쳐버리고 오피스 안을 뒤져서 2만 5천 달러 정도의 돈을 챙겨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잠시 후 경찰과 구급차가 달려오고 영수는 UCLA 대학병원으로 실려 나갔다.
*****
영수가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나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의사가 그의 물건을 만지면서 간호에게 하던 말이 환청같이 귓가를 울렸다.
“Oh my god, where is it”
부러져 나간 갈비 몇 대와 다리의 관통상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복부에 들어박힌 한발은 영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척추 마지막 부위 천추에 들어박힌 총알은 가까스로 제거했으나 주변의 부교감신경을 마비시켜 버렸다. 그 부작용으로 시도 때도 없이 대, 소변을 보게 되었고 손상된 물건의 앞부분은 엉덩이 살을 떼어다 붙여서 보기에는 그럴싸했으나 발기를 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200 파운드가 넘던 거구가 가냘픈 몸매로 바뀌고 항상 주변을 즐겁게 만들던 영수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안절부절 못하고 모든 일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민영이 병원 면회시간에 조금 늦게 오거나 거르게 되면 영수는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져서 수십 번도 넘게 집 전화번호를 돌렸다. 대답이 없으면 온갖 못된 상상으로 조바심을 부리고 급기야는 소리를 지르면서 발광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민영이 인수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쳐서 날뛰곤 했다. 어떨 때는 공교롭게 인수와 민영이 함께 병실에 나타나면 영수의 질투심은 극에 달하고 그들 앞에서 발광을 부린 적도 있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꼬박 한해를 병상에 누워 있던 영수가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에 퇴원했다. 영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는 민영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그냥 참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젊지 않은가? 그냥 모든 것에 화가 날 따름인데 어디서부터 이 말을 시작해야 하나?-
그렇게 예뻐하던 어린 딸에게까지 신경질을 부리고 근처에도 얼씬 못하게 했다. 아파트 이 층 창가에서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어둠이 내리 깔린 골목길을 한참 내려다보고 섰던 영수가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그동안 어떤 놈이 집에 드나들었어?”
“아니 누가 드나들어요?”
“일 년이 넘게 비어있던 집에 온통 남자 냄새가 가득하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차려놓고 살아? 주제에 화병에 꽃까지 꽂아놓고 흥 언제부터 이렇게 호사스럽게 살았어?”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취조하듯 말했다.
“밤낮으로 뛰어다니면서 병시중 들고 딸자식 먹여 살린 나한테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 어떤 놈이 드나들어? 꽃병? 그거 퇴원할 때 인수 형이 병실에 있던 거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온 거야.”
“뭐? 인수 형? 내가 짐작은 하고 있었지!”
“아이고 맙소사, 인수 형 지금 한국에 가고 여기 없어, 그리고 인수 형이니까 시시때때로 들여다보고 애도 챙겨주고 돌봐줬지 어느 한 놈 근처에 얼씬이나 한 줄 알아? 한국에 있는 형님도 전화 한 두 번 하곤 그만이었다고, 친척이 있어? 아는 친구가 있어? 일 년이 십 년 같았다고! 무슨 도망 안 가고 집 지킨 마누라한테 말 다했어?”
민영은 벼르고 있었던 듯 그간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다 내뱉었다. 울먹이며 소리 지르는 아내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영수의 눈에는 굵은 물방울이 맺혔다. 사실 영수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절대 그것이 아니었는데 마음과는 정 반대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 말 속에는 아내만이 아니라 인수 형까지 싸잡아서 욕을 해 버렸으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옳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은 다 욕할 수 있어도 인수 형한테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는 영수였다.
영수가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에 민영이 겨우 꾸려나가던 마켙을 처분해 보려 노력했으나 강도를 당했다는 소문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마틴과 헬퍼 한 명이 겨우 문을 열고 지탱하고 있었다.
영수가 처음 마켙에 돌아와서 한 일은 사무실에 설치했던 방탄 막을 뜯어내는 일이었다. 그 대신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사무실 서랍에 하나 그리고 뒤쪽 창고에 하나씩 아주 손쉬운 자리에 감추어놓았다. 그리고 중단했던 체크캐싱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영수는 만나는 사람들과 유쾌하게 대화도 나누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LA Fitness에 나가서 열심히 운동했다. 누가 봐도 사고 이전의 영수로 돼 돌아온 것 같이 보였다. 인수 형 가게를 통해 많은 양의 물품도 구입하고 모든 일에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다시 끝없는 침묵으로 민영과 딸에게는 곁을 주지 않았다. 순간순간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고 창밖을 바라볼 때 그의 눈에는 차갑고 무서운 살기가 감돌았다. 순간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얼굴로 돌아오곤 했다.
“인수 형 이번에 큰일을 당해놓고 보니까 나도 생명보험 하나는 들어놔야 되겠더라고.”
“왜 갑자기 죽을까 봐 겁나냐? 허기야 총을 네발씩이나 맞아봤으니 겁도 날 만하지”
“그래서 말인데 형 잘 아는 브로커 있으면 소개해줘.”
“그래, 내일 오전에 우리 거래하는 미스터 김한테 너희 가게로 찾아가라고 할게.”
다음날 간혹 신문에서 얼굴을 봐서 알고 있는 보험 대리인 미스터 김이 영수를 찾아왔다. 그도 강도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까다롭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인수 형님 소개로 왔습니다.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셨지요?”
“예, 한 일 년 반 정도 잘 쉬었지요. 전보다 30파운드나 빠져서 날아갈 것 같습니다.”
“생명보험이 필요하시다고요? 얼마나 큰 것을 원하시는지요?”
“사실은 건물을 하나 구입하려고 은행에 SBA론을 신청했더니 융자액에 버금가는 생명보험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얼마 정도의 보험이 필요하신지요?”
“텀으로 한 백만 불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 정도면 월 납입액은 얼마나 될까요?”
경험이 많아 보이는 미스터 김은 현재의 건강 상태는 어떠냐? 담배를 피우는가,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과거와 현재의 병원 기록이 필요하다는 등, 열 가지도 넘는 질문을 하고 긴 서류를 내놓고 여러 군데 사인을 하라고 했다. 한주일 후에 신체검사 하는 사람을 집으로 보내 주겠다고 말하고는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들고 일어섰다.
“매월 백 불에서 백이십 불 정도씩 불입해야 될 겁니다.”
“이제 서류에 싸인 다 해 드렸으니까 내일 죽어도 백 만 불타는 겁니까? 물론 우리 마누라가 타겠지만 말입니다.”
“우선은 우리 회사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하고 앞에서 말씀드린 사고 전후의 병원 기록 정도가 준비되면 회사에서 서류를 보내 드릴 겁니다. 서류상에 Face Amount가 $1.000.000로 되어있지만, 최소한 2년은 살아계셔야 탈수 있지요, 왜 서류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농담 한번 해본 거지요, 사람이 그렇게 맘먹은 대로 죽을 수 있습니까?”
마틴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마켙에 풀타임 직원이 되었다. 영수가 돌아와서 방탄유리를 제거하고 난 후로는 마틴이 캐시어를 맡고 오히려 영수가 상품 진열과 정리를 하면서 마켙 안을 돌아다녔다.
“마틴, 일 할 만하지? 체크캐싱 할 때 수표에 찍힌 회사 이름과 사인을 잘 확인하고 의심스러우면 절대 받으면 안 되는 거야, 항상 조심하라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라울 로폐즈란 놈 기억나지.”
“물론이지요, 라울이 딕시하고 루이스에게 백 불씩 주면서 나를 두들겨 패라고 시켰데요, 주인님이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오게만 하면 그때 라울이 한탕 할 거라고 했데요.”
“그럼 딕시나 루이스를 만나서 라울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내봐.”
“딕시는 이 근처에서 못 봤지만 루이스는 요 앞 네거리에 있는 셀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한번 만나볼게요.”
민영이 마틴을 데리고 월, 화, 수요일 동안 마켙 일을 했고 영수는 목, 금, 토요일에 출근해서 체크캐싱을 맡아서 했다. 영수가 체력보강에 열심을 보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므로 인수와 주변 사람들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오면 마치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권총 두 자루를 책상에 꺼내놓고 기름걸레로 깨끗이 닦아서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곤 했다. 어느덧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마틴, 딕시나 루이스를 아직도 못 찾았냐?
“루이스는 라울이 어느 구석에 틀어 박혀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하고요 딕시를 찾으면 혹시 로페즈 형제 소식을 알아 낼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다음날 오후 영수가 셀 주유소로 루이스를 찾아갔다.
“루이스 나를 기억하겠지, 마켙 주인, 네가 로페즈하고 같이 와서 우리가게 털어 갔잖아 이 새 끼야! 내가 살아 돌아왔으니까 이번에는 네 차례야 인마!”
“하이 보스, 그때 마틴을 때린 놈은 비쩍 마르고 시꺼먼 딕시였고 나는 그냥 옆에 서 있었어요, 저는 경찰에서도 아무 혐의가 없다고 하면서 다음날 풀어 줬어요.”
“거짓말하지 마 이 새끼야, 너 라울한테 백 불 받았어, 안 받았어?”
“저는 안 받았습니다. 딕시는 돈도 받고 마틴 머리도 까서 감방에 갔다 왔고요.”
“그래? 그러면 딕시 찾아가지고 나한테 끌고 와! 이번 토요일까지 시간 줄게.”
루이스가 토요일 오후에 마켙으로 찾아왔다.
"딕시는 못 찾았고요, 대강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어요. 그놈 있던 하숙집 아저씨 말로는 산디에고 거의 다가서‘라모나’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어요.”
영수가 선글라스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딕시를 찾아갔다. 조그마한 공장에 작은 밀링 머신이 두 대 있고 딕시와 주인 인 듯한 멕시칸 영감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딕시가 밖으로 나와 자기 모터사이클을 세워 놓은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하이 딕시 잘 있었냐?”영수가 앞을 막아섰다.
“누구신데 제 이름을 부르세요?”
“날 자세히 봐,
엘에이를 배경으로 하니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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